
[지디넷코리아]세계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 (Health at a Glance) 2025'에 따르면 회원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23년 18.5%에서 2050년 26.4%로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의 변화는 더 가파르다. 국가데이터처 '2026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인구 비중은 2000년 7.2%에서 2026년 21.6%로 세 배 수준이 됐다.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고령화 통계를 접하면 우리는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부양·복지 부담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고령인구의 증가만큼 주목해야 할 것은 고령층 자체의 변화다. 과거의 노인상으로 오늘의 고령자를 이해하기에는 교육, 건강, 경제적 여건과 디지털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보건복지부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졸 이상 비율은 2008년 17.2%에서 2023년 38.2%로 높아졌고, 노인 가구의 연간소득도 같은 기간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스마트폰 보유율 역시 2020년 56.4%에서 2023년 76.6%로 상승했다. 물론 평균적인 개선이 모두의 현실은 아니다. 빈곤과 고립 속에 놓인 고령자도 적지 않으며, 이들을 위한 지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고령층을 일률적으로 보호와 부양의 대상으로만 바라 보기는 어렵다. 특히 산업화와 정보화를 함께 경험한 대한민국의 60~70대 가운데는 전문지식과 숙련기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 조직 운영의 노하우와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한 이들이 많다.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비해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더디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9조는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하도록 규정하지만, 주된 일자리에서 그보다 일찍 물러나는 경우도 많다. 퇴직 이후 축적한 전문지식과 현장 경험을 자신의 역량과 희망에 맞게 활용할 기회도 충분히 다양하지 않다. 건강과 능력, 활동 의지가 서로 다른데도 나이만을 기준으로 사회적 역할을 제한한다면, 개인의 기회 상실을 넘어 사회적으로 축적된 지식과 경험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인간의 가치는 신체적 노동생산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복잡한 문제를 풀고 갈등을 조정하며 적절한 결정을 내리는 데는 지식뿐 아니라 경험에서 얻은 판단력과 통찰이 필요하다. 공자는 『논어』 '위정'에서 일흔에 이르러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는 나이 자체의 효능이 아니라 오랜 배움과 수양으로 도달한 경지를 말한다. 젊음이 가능성의 자본이라면, 나이 듦은 축적의 자본이다. 경험과 지식이 성찰을 거쳐 지혜가 되고, 그 지혜가 연결되고 공유될 때 사회의 자본이 된다.경제학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쌓이는 역량을 '인적자본'으로, 신뢰와 네트워크가 만드는 협력의 기반을 '사회적 자본'으로 설명해 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과 조직에 축적된 경험, 통찰, 판단 능력을 '지혜 자본(Wisdom Capital)'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고령 근로자의 경험을 조직의 지혜 자본으로 분석한 연구도 있다.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장하면, 인구 고령화는 사회적 지혜 자본을 형성할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성찰하고 새로운 상황에 맞는 판단으로 발전시킬 때 그 가치가 생긴다. 숙련 기술자의 노하우, 경영자의 시행착오, 교육자와 공직자의 현장 경험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 못한다면 개인의 은퇴는 사회적 지식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말리 출신의 작가이자 역사학자 아마두 함파테 바가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 한 곳이 사라지는 일에 비유한 것도 이 때문이다.그렇다면 개인에게 축적된 지혜를 어떻게 사회의 자본으로 바꿀 것인가. AI와 디지털 기술은 그 전환을 돕는 수단이다. 첫째, 숙련자의 작업 과정과 시행착오, 문제해결 경험을 인터뷰·영상·음성으로 기록하고 AI로 정리·검색할 수 있게 하면, 문서로 남기기 어려웠던 암묵지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다. 둘째, 고경력자의 전문 분야와 활동 조건을 디지털로 체계화하고 기업·지역사회의 구체적인 문제와 연결하면 상근 재취업이 아니더라도 자문·멘토링·기술 전수·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길이 열린다. 일본의 실버인재센터는 고령자의 경험과 지역사회의 단기적 일거리·사회참여 수요를 연결해 온 사례다. 이를 전문인력의 프로젝트 매칭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생성형 AI는 자료 조사, 문서 작성, 분석, 번역의 부담을 줄여 경험 많은 사람이 전문적 판단과 협력에 더 집중하도록 도울 수 있다. 젊은 세대의 디지털 역량과 고령 세대의 현장 경험이 결합할 가능성도 커진다. 다만 AI가 경험을 곧바로 지혜로 바꾸거나 일자리를 저절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디지털 교육과 접근성, 개인정보 보호, 결과의 정확성 검증, 실제 수요를 발굴하는 중개 조직이 함께 필요하다. 정년 연장 논의와 더불어 프로젝트 기반 전문활동을 중소기업·스타트업의 문제해결 수요와 연결하는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많은 고령자들이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경륜, 지혜를 전수하고 싶어서 일하기를 원한다. 사회는 그것을 개인의 선의에 맡겨 둘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일할 기회를 여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지혜가 사회의 자본으로 축적되는 경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 설계에는 정부의 제도와 기업 현장이 함께해야 한다. 고령화의 부담을 관리하는 일과 지혜 자본을 활용하는 일은 모순되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질문은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에서 '길어진 삶과 축적된 경험을 어떻게 사회적 가치로 연결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한다. 나이 듦은 지혜가 축적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 지혜를 사회와 나누고 다음 세대로 이어갈 때, 에이징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자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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